스쿨버스 안에서 제 딸을 괴롭히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같은 반이 아니지만, 작년에 같은 반 친구였나봅니다. 그래서, 버스기사가 두 아이를 한 자리에 앉도록 했는데, 이 친구가 어느 날은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기도 하고, 제 딸이 그린 그림을 찢어버리거나 꾸겨 버리는가 하면,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하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울면서 집에 오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아이가 학교 가방에 넣어갔던 장난감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디다 흘렸겠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자기는 분명 가방 안에 넣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친구가 말하기를 자신이 그 장난감을 가지고 가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당당하게 말한 것입니다. 제 아이는 그 날도 울며 집에와서는 저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나중에 똑같은 것을 사주겠노라’고 약속하고는 아이를 진정시켰지만, 더 이상 버스를 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이사를 가게되면 더 이상 버스를 못타게 될 것이고, 결국 약 3주 정도 일찍 버스 서비스를 끊자고 결정하고, 선생님께 메모를 남겼습니다.
이틀 뒤 선생님이 메모를 보고 아이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장난감은 망가져있었지만 돌려주었고, 저녁에 아이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작년, 두 아이가 한 반일 때에 그 친구가 제 아이에게 거울 하나를 빌려주었답니다. 첫 이빨이 빠진 값으로 엄마에게 받은 선물인데, 그것을 제 아이에게 빌려주었고, 제 아이는 그것을 하루 가지고 놀다가 돌려주기로 했는데, 그만 어린 동생이 거울을 깨뜨린 것입니다. 그래서 깨진 거울을 돌려줄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그 친구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답니다. 이것을 약 1년간 마음에 담고 있으면서, 어떻게 제 아이의 마음을 똑같이 아프게 해줄까 생각하다가, 결국 제 아이의 장난감을 가지고 가서 똑같이 망가뜨리자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는 사실 놀랐습니다. 어린 아이가 몇 푼 되지 않는 장난감 때문에 1년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내가 느낀 아픔을 똑같이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안했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새 거울을 사줬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설명하고 카드를 쓰도록 했습니다. 다음 날 카드를 전달하며 ‘미안하다’ 말했더니, 다시 친구하자고 했답니다. 어린 아이들도 그런데 어른들은 어떻겠습니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사실 알고보면 큰 일도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관계가 되면 좋겠습니다.
박현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