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전에도 썼지만, 한국에서는 Me, too 운동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곧, 과거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당시에는 수치심과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혀서 가해자들이 그에 합당한 벌을 받도록 하는 운동입니다. 처음에는 문화 예술계에서 시작 되었는데, 이제는 종교계와 정치계까지 퍼져서 매일 새로운 피해 사례가 발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 주에는 대선 후보로 뛰었던 적이 있는 유명 정치인의 성폭행 사실이 폭로되면서 사회가 많이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피해 사례가 발표되고 나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반응이 처음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처음에는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거나 덮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많아지고, 더 많은 사례들이 폭로되고 나면, 그제서야 ‘잘못했다’고 사죄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하는 것이겠지만, 그 중에서는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일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병패 때문입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아이들이 이쁘다며 몸에 손을 대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성기를 만지면서 농담을 해도 그것이 성폭행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하는 사람은 수치스러울지라도, 사회 전체가 그것을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수치를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되면서, 직장에서 여직원에게 성적인 농담을 하거나 부적절한 신체의 접촉을 해도, 그것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며, 성폭행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특별히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쉽게 한 행동인데, 그것이 잦아지면서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반드시 성폭행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한 마디,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행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인식해야 합니다. 때리는 사람은 맞은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모르는 것입니다. 아픔은 맞은 사람이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가 되었는지 아닌지는 상처 받은 사람이 아는 것입니다. 나는 상처준 일이 없다고 해도, 상대방에게 그것이 상처가 되었다면, 그것은 상처를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왜 이 일에 상처를 받느냐?’고 말하지말고,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상처 받은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보듬어주며 함께 치유합시다.
박현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