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소설가들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내기를 했다고 합니다. 단어 여섯 개로 소설을 지어서 사람들을 울릴 수 있다면 헤밍웨이가 이기게 되는 내기였습니다. 물론 내기는 헤밍웨이가 이겼는데, 헤밍웨이는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아기 신발 팝니다. 한번도 신지 못했습니다!’ 이런 의미의 글을 쓴 것입니다. 아기 신발인데 한번도 신지 못했다는 것은, 아기가 신발을 신어 보기 전에 죽었다는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슬픈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이 일화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불분명 하지만, 우리가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앞에 세워둔 펫말에는 “저는 장님입니다. 도와주세요!”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깡통에 동전을 넣으며 지나갔지만, 깡통 안의 동전은 몇 푼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길을 지나가던 한 신사가 물끄러미 펫말을 바라보더니 펫말의 글을 고쳐 주었습니다; “오늘은 참 아름다운 날이지만, 저는 볼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날을 볼 수 없다는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깡통 안에는 동전이 가득 차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같은 말이라도, 우리가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를 할 때가 많습니다. 짜증 섞인 말을 하거나, ‘이렇게 해주면 정말 좋겠다’는 말 대신에 “이렇게 안 하면 혼난다”라는 말이 더 쉽게 나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한 때는 이런 말로 전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맞는 말이면서도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듣기에도 좋은 말이면 좋지 않을까요? 성도 간에 대화를 나눌 때에도 말하기 전에 잠시 쉬었다가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말하기에 급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여 지혜롭고 은혜로운 말을 하는 하이랜드 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박현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