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에, 제가 만난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질문하는 것이 “태권도”였습니다. 저는 90년에 미국에 왔는데, 그 때만해도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서 많은 것을 물어보았는데, 미국 사람들은 동양인들이 모두 이소룡처럼 무술을 잘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결국에는 “태권도”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태권도를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대답해줄 말이 없었습니다. 태권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경험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태권도는 나와 상관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우리도 또한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부활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우리는 그 동안 배운 것들을 토대로 하여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나와 어떤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절이 되면, 왠지 모르는 분위기에 빠져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 정말 나와 어떤 상관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내 삶에 도대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도 보이셨다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보다도 더 확실한 증거가 있었는데,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울 안에 살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안에 살고 계신 예수님 때문에, 바울은 예수를 위해서 능욕 당하고, 고통 당하는 것도 기쁨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이야기하지만, 바울에게는 그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 안에 살고 계셨던 것입니다.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기뻐하는 우리들은, 예수의 부활이 과연 나와는 어떤 상관이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삶 가운데 모시고 사는 하이랜드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박현수 목사